극장 불이 꺼지는 순간, 솔직히 저는 기대를 잔뜩 품고 있었습니다. 인젠 실험실 장면에서 시작해 도심 한복판에 브라키오사우루스가 흐릿하게 서 있는 그 첫 장면을 봤을 때, '이번엔 뭔가 다르겠다'는 예감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중반을 넘어가면서 그 예감은 조금씩 빗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기대감이 어디서 생겨났고 어디서 무너졌는지 제 경험을 바탕으로 짚어보겠습니다.

처음 그 기대감은 어디서 왔나
저도 처음엔 예고편만 보고 '이거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젠(InGen) 실험실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서 인젠이란 쥬라기 공원 시리즈의 근간이 되는 유전공학 기업으로, 공룡 복원의 출발점이 된 조직입니다. 그 실험실에서 키메라(Chimera) 실험, 즉 여러 생물의 유전자를 혼합해 전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드는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는 설정이 등장하는데, 이게 꽤 설득력 있게 다가왔어요.
쥬라기 월드에서 인도미누스 렉스(Indominus Rex)라는 혼종 공룡을 통해 시도했지만 충분히 파고들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그 과제를, 이번 작품이 완수하려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리고 도심 한복판에 브라키오사우루스가 서 있는 장면은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정말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공룡과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라는 설정을 드디어 제대로 활용하려는 구나 싶었어요.
실제로 쥬라기 공원 원작이 개봉했던 1993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CGI(Computer Generated Imagery), 즉 컴퓨터로 생성한 디지털 이미지 기술과 실물 크기의 기계 모형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례 없는 시각적 충격을 안겨줬습니다. 그 충격을 처음 경험한 세대로서, 저는 새로운 시리즈가 그 감동을 어떻게 재해석할지 기대했습니다. 출처: IMDb — Jurassic Park (1993)
- 인젠 실험실의 키메라 실험 설정 — 시리즈의 핵심 주제를 다시 꺼내는 출발점
- 도심 속 브라키오사우루스 장면 — '공존 세계'라는 설정을 시각적으로 확장한 첫 신호
- 인도미누스 렉스 이후 미완으로 남았던 혼종 공룡 서사의 재시도
시나리오가 무너지는 순간들
제 경험상 이건 좀 달랐습니다. 중반부에 접어들면서 가장 먼저 느낀 건 세계관의 헐거움이었어요. 전문가들도 목숨을 걸어야 하는 미지의 섬에 아무런 대비 없이 들어가는 팀, 그리고 그 팀보다 훨씬 침착하게 움직이는 일반인 가족들. 이 장면들을 보면서 '이 작품에서는 공룡 전문가라는 것이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고 보는 시각도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단순히 개연성 문제가 아니라 시리즈 전체의 철학과 충돌하는 지점이라고 봅니다. 원작 쥬라기 공원에서 그랜트 박사(Dr. Grant)는 자신의 전문성조차 공룡 앞에서는 한없이 무력해진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줬습니다. 바로 그 무력감이 공룡을 경이롭고 두렵게 만들었어요. 근데 이번 작품의 일반인 가족들은 마치 공룡 행동학을 전공이라도 한 것처럼 움직입니다.
내러티브 구조(Narrative Structure), 즉 이야기를 구성하는 사건의 배열과 인과관계라는 측면에서도 문제가 보입니다. 루벤 가족이 구조된 뒤에 보이는 배은망덕한 태도라든지, 던컨이 티라노사우루스와 정면으로 마주쳤음에도 아무런 설명 없이 살아 돌아오는 장면 같은 것들이요. 어떤 분들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그런 걸 따지는 게 과한 것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서스펜스와 감동은 결국 인물의 행동이 납득될 때 비로소 작동하니까요.
박사의 대사로 환경 파괴를 경고하는 장면도 제가 직접 보면서 아쉬움이 컸습니다. 메시지(Message)란 등장인물이 말로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흐름 속에 녹아들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집니다. 이 작품은 그 차이를 놓쳤습니다.
공룡 활용, 어디까지는 좋았나
그래도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티라노사우루스가 밝은 대낮에 전속력으로 달리는 장면에서 심장이 뛰었어요. 과거에는 어둠이나 빗속에 공룡을 숨겨야 했던 기술적 한계가 있었다면, 이번 작품은 시각효과(VFX, Visual Effects) — 즉 디지털 기술로 실사 영상에 가상의 요소를 합성하는 기법 — 의 발전 덕분에 공룡을 환한 햇빛 아래 고스란히 노출시킬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부분만큼은 기술적 성취가 분명합니다.
주유소 편의점 시퀀스도 제가 직접 봤을 때 꽤 완성도 있다고 느꼈어요. 원작 쥬라기 공원 1편의 주방 장면을 오마주한 이 시퀀스는, 공간을 활용한 긴장감 연출 면에서 이 영화에서 가장 볼 만한 장면 중 하나였습니다. 벨로시랩터(Velociraptor)만큼의 위협감은 아니었지만, 구성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
~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데, 저는 디-렉스(D-Rex) 디자인에 대해서는 긍정적입니다. 에이리언을 연상시키는 혼종 생물의 흉측한 외형은, 인간의 탐욕이 낳은 결과물이라는 콘셉트를 시각적으로 잘 구현했습니다. 문제는 그 이후입니다. 출처: Rotten Tomatoes — Jurassic World Rebirth
디-렉스가 실제로 이 세계에 어떤 파괴를 초래하는지, 다른 공룡들과의 관계에서 어떤 존재감을 발휘하는지가 거의 그려지지 않습니다. 헬기를 한 번 깨무는 정도로 마무리되어 버리는 이 크리처는, 결국 마지막 장면을 위해 소비되는 장치에 불과했습니다. 쥬라기 월드에서 인도미누스 렉스가 영화 내내 관객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과는 결이 다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전편 안 봐도 볼 수 있나요?
A. 전편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따라가는 데 큰 무리는 없습니다. 다만 인도미누스 렉스나 인젠의 역사 같은 맥락을 알고 있으면 초반 설정이 더 흥미롭게 느껴집니다. 쥬라기 월드(2015) 정도만 보고 가셔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Q. 아이와 함께 보기 괜찮은 영화인가요?
A. 공룡을 좋아하는 아이들에게는 스크린 가득 공룡이 등장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경험이 될 수 있습니다. 폭력적인 장면이 일부 있으나 시리즈 전반적인 수위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성인 관객 입장에서는 몰입도가 다소 아쉽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미리 감안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Q. 디-렉스는 인도미누스 렉스보다 강한가요?
A. 설정상 강력한 혼종 생물로 제시되지만, 영화 안에서 그 능력이 충분히 묘사되지 않아 비교하기가 어렵습니다. 인도미누스 렉스가 지능, 보호색, 전투력 등을 영화 내내 꾸준히 어필했던 것과 달리, 디-렉스는 마지막 장면에서야 등장해 존재감을 충분히 드러내지 못한 채 마무리됩니다.
Q. 시리즈 팬이라면 그래도 볼 가치가 있을까요?
A. 원작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오마주 장면들에서 반가움을 느끼실 수 있고, VFX로 구현된 공룡 비주얼도 확실히 발전했습니다. 그 기대로 접근하시면 어느 정도 즐기실 수 있지만, 시나리오 완성도에 대한 기대는 낮추고 가시는 편이 나을 것 같습니다.
결론
극장을 나서면서 제가 한 첫 번째 행동은 집에 돌아와 1993년 쥬라기 공원을 다시 꺼내 보는 것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이 영화의 가장 큰 공로는 스필버그의 원작이 왜 위대했는지를 새삼 확인하게 해 준 것인지도 모릅니다. 브라키오사우루스를 처음 봤을 때의 경이감, 티라노사우루스가 울타리를 밀어붙이던 그 공포감 — 그건 단순히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이야기가 공룡을 얼마나 진지하게 다뤘느냐의 문제였습니다.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은 훌륭한 소재와 설정을 가지고 출발했으나, 시나리오의 허술함과 공룡의 소비적 활용이 결국 발목을 잡았습니다. 저는 이 작품에 10점 만점에 3점을 주겠습니다. 시리즈를 처음 접하는 어린 관객이라면 여전히 즐거운 경험이 되겠지만, 시리즈의 팬이라면 오히려 원작을 다시 보는 기회로 삼으시길 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