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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오브 인터레스트 (악의 평범성, 사운드 디자인, 루돌프 회스)

시네씨 2026. 8. 10. 16:49

목차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홀로코스트를 다룬 영화라면 으레 학살 현장의 참혹함을 직접 보여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단 한 프레임도 수용소 안을 직접 비추지 않습니다. 아우슈비츠 소장 루돌프 회스의 가족이 담장 바로 옆에서 텃밭을 가꾸고 꿀을 먹는 일상을 보여줄 뿐인데, 그 뒤로 스며드는 총소리와 비명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며칠간 귀에서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사운드 디자인이 만들어낸 공포 — 보이지 않는 학살

    제가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압도당한 건 영상이 아니라 소리였습니다. 영화가 시작되는 순간부터 검은 화면 위로 정체불명의 소리가 깔리는데, 처음에는 그냥 주변 소음처럼 들립니다. 두두두두 하는 진동음, 먼 곳에서 누군가 외치는 목소리, 쿵쿵거리는 둔탁한 소리. 마치 아파트 위층에서 뭔가 공사하는 것처럼 일상적으로 들려옵니다.

    그런데 영화가 진행될수록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점점 선명해집니다. 담장 너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매일 수백에서 수천 명이 죽어 나가는 소리였던 겁니다. 제가 직접 극장에서 봤을 때, 중반부쯤 그 사실을 완전히 인식하는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걸 느꼈습니다. 불쾌감이 층층이 쌓이다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구조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의 핵심 연출 전략인 사운드 디자인(Sound Design)입니다. 사운드 디자인이란 영화에서 대사 외의 모든 소리, 즉 효과음·배경음·음악을 의도적으로 설계해 감정과 의미를 전달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은 이 기법을 극단까지 밀어붙여, 학살의 참혹함을 눈이 아닌 귀로만 전달합니다. 그 결과가 직접 보여주는 것보다 훨씬 더 오래, 더 깊이 남습니다.

    회스의 아내가 유대인 하녀에게 "내 남편한테 말하면 순식간에 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어"라고 협박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저는 이 대사를 들으면서 그게 실제로 가능한 공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연기 냄새를 맡으며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는 이 가족의 모습이 한꺼번에 겹쳐지면서 정말 속이 뒤틀렸습니다. 이 영화가 사운드와 시각의 불일치를 통해 만들어내는 공포는, 어떤 고어 영화보다도 오래 남는 종류의 것이었습니다.

    • 시작부터 끝까지 수용소 내부를 단 한 프레임도 직접 보여주지 않음
    • 총소리·비명·소각 소리를 일상 배경음처럼 설계해 불쾌감을 점층적으로 쌓아 올림
    • 담장 너머로 올라오는 검은 연기와 밤의 불빛이 학살을 간접적으로 시각화
    •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한 소녀 장면만 유일하게 다른 질감으로 구분, 희망의 온기를 표현
    요약: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사운드 디자인은 학살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관객을 가장 오래 압도하는, 이 영화 최강의 무기입니다.

     

    악의 평범성 — 루돌프 회스와 아이히만이 증명한 것

    헝가리 유대인 수십만 명을 매일 1만 명씩 학살하는 작전에 자기 이름이 붙었다며 아내에게 로맨틱하게 전화하는 장면. 파티장 천장이 너무 높아서 가스로 죽이기 어렵겠다고 태연히 계산하는 장면. 저는 이 두 장면에서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강한 소름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정작 무서운 건 루돌프 회스가 괴물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이고, 전출 명령에 가족과 헤어지기 싫어 고민하는 평범한 남자입니다. 감독은 창살 너머로 회스를 비추는 샷을 통해, 그 역시 자신이 만든 지옥에 갇혀 있다는 걸 암시합니다. 이것이 바로 이 영화가 정면으로 다루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이라는 개념입니다. 악의 평범성이란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1961년 아돌프 아이히만의 예루살렘 전범 재판을 참관한 뒤 제시한 개념으로, 악이 특별한 광기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들의 복종과 무지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입니다(출처: Stanford Encyclopedia of Philosophy).

    아이히만은 재판에서 자신을 "좋은 남자"라 불렀습니다. 가족에게 헌신적이었고, 이웃에게 평판도 좋았고, 칸트와 헤겔의 철학까지 인용하며 "나는 국가가 시키는 일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지적한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그의 죄는 잔인함이 아니라 무지(Thoughtlessness), 즉 자신의 행위가 어떤 결과를 낳는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었습니다(출처: Britannica).

    회스와 아이히만이 겹쳐 보이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아이히만이 재판에서 의기양양하게 칸트를 인용할 수 있었던 것, 회스가 소각로 효율을 고민하면서 동시에 아내를 그리워할 수 있었던 것, 이 모두가 "나는 나쁜 짓을 하고 있다"는 자기인식 자체를 완전히 지워버린 상태에서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 영화가 불편한 이유는 회스가 나와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상어와 상투어 속에 학살이 녹아 있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주는 가장 서늘한 충격이었습니다.

    마지막 구토 장면에 대한 해석을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회스가 헛구역질을 하는 것은 양심의 가책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남은 인간성 한 조각마저 뱉어내고 완전한 괴물이 되려는 시도였다고 봅니다. 그래야만 헝가리 유대인 대량 학살 작전을 수행할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그 직후 현재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으로 화면이 전환됐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오는 구성은, 이 죄가 과거에 끝난 일이 아니라는 감독의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합니다.

    요약: 악의 평범성은 괴물이 아닌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에게서 비롯된다는 것을 회스와 아이히만의 나란한 모습이 증명합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존 오브 인터레스트, 왜 이렇게 불편하고 지루하게 느껴지나요?

    A. 이 영화는 의도적으로 자극을 절제합니다. 극적인 사건 대신 가족의 평범한 일상을 길게 보여주는 것이 전략인데, 그 일상 뒤로 흘러나오는 소리의 정체를 인식하는 순간 불쾌감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구조입니다. 지루함을 견디고 나면 그 효과가 훨씬 강하게 남습니다.

     

    Q. 마지막 구토 장면은 무슨 의미인가요?

    A. 해석이 여럿 있지만, 저는 회스가 마지막 인간성마저 뱉어내려 한 시도라고 봅니다. 양심에 의한 자책이 아니라, 곧 수행해야 할 대량 학살 작전 앞에서 내면의 마지막 걸림돌을 제거하려는 행위로 읽힙니다. 현재의 아우슈비츠 박물관으로 전환됐다가 다시 과거로 돌아오는 구성은 이 역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선언입니다.

     

    Q. 열화상 카메라로 찍힌 소녀는 실존 인물인가요?

    A. 네, 실존 인물입니다. 알렉산드라 비스트로 코지라는 폴란드 소녀로, 유대인이 아니었음에도 밤마다 수용소 근처에 사과 등 식료품을 숨겨두어 수감자들을 도왔다고 전해집니다. 감독은 이 장면을 열화상 카메라로 촬영해 영화의 나머지 세계와 완전히 다른 질감으로 구분함으로써, 절망 속 유일한 희망의 온기를 표현했습니다.

     

    Q. 악의 평범성이란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A.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1963년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악이 특별한 사이코패스적 광기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기 행위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명령에 따르는 평범한 사람들의 무지와 복종에서 비롯된다는 이론입니다. 아이히만이 스스로를 성실한 공무원으로 여겼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결론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제가 올해 본 영화 중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작품입니다. 다 보고 나서도 며칠간 그 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고, 일상 속에서 문득 회스 가족의 웃는 얼굴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학살의 참혹함을 직접 보여주지 않고도 이만큼 깊은 상처를 남긴 영화는 드뭅니다.

    이 영화가 제기하는 질문은 단순합니다. 지금 내 일상의 담장 너머에서 무슨 소리가 나고 있는가, 그리고 저는 그 소리를 듣고 있는가. 홀로코스트는 괴물들이 일으킨 사건이 아니라,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재앙이었습니다. 그 사실이 이 영화를 불편하게 만드는 동시에, 반드시 봐야 하는 이유가 됩니다. 조나단 글레이저 감독의 전작인 《언더 더 스킨》과 함께 보시면 이 감독의 연출 방식이 얼마나 일관되고 독보적인지 더 선명하게 느껴질 겁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QXFpxI_XEQ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