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고백하면, 극장에서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1편의 계단 춤 장면이 줬던 그 전율을 기대하고 들어갔는데, 아서 플렉은 재판정에 앉아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거든요. <조커: 폴리 아 되>는 전편이 쌓아올린 모든 것을 감독 스스로 해체하는 이례적인 속편입니다. 법정 드라마의 구조적 재미도, 캐릭터 서사의 밀도도 모두 빠진 자리에 무엇이 남는지, 며칠을 곱씹으며 따져봤습니다.

법정드라마가 실패하는 조건을 스스로 충족했다
법정 드라마 장르에는 하나의 공식이 있습니다. 사건의 진실이 불분명할수록 관객의 몰입도는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시드니 루멧 감독의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이 60년이 넘도록 법정 드라마의 교과서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단 하나의 증거가 배심원단의 만장일치 유죄 평결을 뒤흔들고, 이후 작은 단서들이 쌓이면서 진실의 방향이 계속 바뀌는 구조 자체가 관객에게 퍼즐을 푸는 쾌감을 줍니다.
여기서 배심원제(Jury System)란 일반 시민이 유무죄를 결정하는 제도로, 법률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의 판단이 충돌하면서 극적 긴장이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쉽게 말해, 정답을 모르는 사람들이 진실을 찾아가는 과정이 드라마가 되는 구조입니다. 미국 법정 영화가 한국 법정 영화보다 훨씬 다채로운 긴장감을 갖는 이유도 바로 이 제도적 차이에 있다고 봅니다(출처: United States Courts).
그런데 <조커: 폴리 아 되>의 법정은 이 공식을 처음부터 포기합니다. 관객은 이미 1편에서 아서 플렉이 여섯 명을 살해하는 과정을 전부 목격했습니다. 진실이 뻔히 공개된 재판, 미스터리가 없는 법정 드라마는 그 자체로 장르의 핵심 동력을 잃습니다. 어떤 증인이 나와도, 어떤 변호 논리가 제시되어도 새롭게 밝혀질 것이 없습니다.
변호인 측이 내세우는 유일한 전략은 해리성 정체장애(DID, Dissociative Identity Disorder)입니다. DID란 하나의 신체 안에 둘 이상의 독립된 인격이 존재하는 심리 장애로, 법정에서 심신 상실의 근거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아서 본인이 이 전략에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순간, 변호 시나리오는 완전히 붕괴됩니다. 법정 드라마의 서스펜스 구조가 사라진 자리에 관객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은 지루함뿐이었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게 정확히 이겁니다. 뭔가 일어날 것 같은데, 결국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감각이요.
- 법정 드라마의 핵심 재미: 진실의 불확실성과 그것이 뒤집히는 과정
- <조커: 폴리 아 되>의 치명적 구조 문제: 관객이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음
- DID 변호 전략마저 주인공 본인이 스스로 무력화시키는 아이러니
- 배심원제 없는 국내와 달리, 미국식 법정 드라마가 갖는 구조적 장르 강점도 이 영화에서는 활용되지 않음
서사 붕괴와 속편의 책임 — 감독은 자기 말을 지켰는가
극장을 나오면서 며칠이나 이 질문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감독은 왜 자기가 만든 상징을 스스로 부숴버렸을까." 1편의 토드 필립스는 아서 플렉의 빈곤과 학대, 정신 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꼼꼼하게 묘사하면서 분명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소외된 계층을 제대로 돌보지 않으면 결국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괴물이 탄생하고, 그 분노는 기존 질서를 뒤흔드는 기폭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편에서 아서는 그 상징성을 스스로 내려놓습니다. 법정 폭파 기회마저 거부하고, 마지막에는 조커를 추종하는 팬에게 칼에 찔려 허무하게 죽습니다. 할리 퀸조차 결국 조커를 부정합니다. 캐릭터 서사(Character Arc)란 인물이 시련을 통해 변화하거나 선택의 대가를 치르는 과정입니다. 여기서 아서의 아크는 성장도 파멸도 아닌 그냥 소멸에 가깝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릅니다. 비극적 결말과 허무한 소멸은 전혀 다른 감정을 줍니다.
물론 이 영화가 가진 미덕이 없는 건 아닙니다. 호아킨 피닉스는 또다시 뼈만 남은 몸으로 공허한 인간의 밑바닥을 처절하게 연기했고, 레이디 가가는 광기와 매혹 사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소화하며 상당한 존재감을 발휘했습니다. 로렌스 셔 촬영감독이 만들어낸 화면은 아캄 수용소의 잿빛 공간과 뮤지컬 시퀀스의 화려한 조명이 충돌하는 지점에서 회화처럼 아름다웠습니다. 영화의 시각적 완성도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습니다(출처: IMDb, Joker: Folie à Deux).
하지만 미장센(Mise-en-scène)이란 화면에 담긴 모든 시각 요소의 배치를 의미하는데, 아무리 미장센이 뛰어나도 그것이 받쳐줘야 할 서사가 무너지면 장식에 불과해집니다. 조커라는 상징을 걷어내고 나면 아서 플렉은 그냥 미친 살인범이 되고, 그 미친 살인범의 법정 투쟁을 두 시간 가까이 지켜보는 건 결국 지치는 일이었습니다. 범죄도시 시리즈에서 마석도가 갑자기 비폭력 운동을 설파하면 그건 전복이 아니라 사기에 가깝듯이, 조커라는 타이틀을 달고 조커를 해체하는 건 창작자가 자기 작품에 지는 책임의 문제라고 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조커 뮤지컬 영화인가요?
A. 정확히는 뮤지컬 드라마로 분류됩니다. 아서와 할리 퀸의 관계를 중심으로 뮤지컬 시퀀스가 삽입되는 구조인데, 이 장면들은 시각적으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다만 뮤지컬 장면이 서사의 흐름을 이어주는 기능보다는 이야기의 정체를 가리는 역할에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Q. 1편을 안 봐도 조커2를 이해할 수 있나요?
A. 기본적인 줄거리 파악은 가능하지만, 영화가 가진 논쟁의 핵심은 1편과의 관계에 있습니다. 1편에서 아서 플렉의 성장 과정과 조커 탄생 서사를 먼저 경험해야 2편이 그것을 어떻게 해체하는지, 그리고 그 해체가 설득력이 있는지 판단할 수 있습니다. 1편 없이 보면 그냥 우울한 법정 영화로만 느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Q. 레이디 가가의 연기는 어떤가요?
A. 노래가 삽입된 장면에서는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줍니다. 다만 할리 퀸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영화 후반부에 서사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방향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연기력과 별개로 캐릭터 활용이 아쉽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배우 자체의 역량은 충분히 발휘됐다고 봅니다.
Q. 폴리 아 되(Folie à Deux)가 무슨 뜻인가요?
A. 프랑스어로 "둘이 함께하는 광기"를 의미하는 정신의학 용어입니다. 여기서 폴리 아 되란 두 사람이 동일한 망상이나 정신병적 증상을 공유하는 현상을 뜻하는데, 영화에서는 아서와 할리 퀸의 관계, 나아가 조커라는 상징에 열광하는 대중과 아서의 관계를 함께 암시하는 제목으로 쓰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조커: 폴리 아 되>는 만족스러운 관람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법정 드라마의 기본 공식을 처음부터 포기했고, 인물의 내면 갈등도 관객에게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이 영화가 며칠이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건, 속편이 전편에 대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이렇게 정면으로 건드린 작품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창작자가 스스로 만든 상징을 해체하는 시도 자체는 논쟁거리가 됩니다. 다만 그 시도가 설득력을 갖추려면 해체 이후의 빈자리를 채울 무언가가 있어야 했고, 이 영화는 그 부분에서 답을 내놓지 못했습니다.
1편을 본 뒤 조커라는 캐릭터에 강하게 끌렸다면, 2편은 차라리 그 감정을 그대로 간직한 채 보지 않는 쪽이 나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속편이 전편의 서사를 어떻게 계승하거나 배반하는지에 관심이 있다면, 여러 의미로 분석할 거리가 풍성한 작품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