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드웨이 역대 흥행 2위 뮤지컬이 스크린으로 왔습니다. 사실 제가 뮤지컬 위키드를 워낙 좋아했던 터라, 영화화 소식을 들었을 때 기대보다 걱정이 앞섰습니다. 무대에서만 가능한 그 전율을 과연 카메라가 담아낼 수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런데 극장을 나오면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오즈의 마법사에서 시작된 이야기, 위키드의 원작 배경
혹시 오즈의 마법사를 제대로 읽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저는 솔직히 이름만 알고 줄거리는 어렴풋한 쪽이었습니다. 토네이도에 집이 날아간 소녀 도로시가 오즈의 세계에 도착해 허수아비, 양철 나무꾼, 겁 많은 사자를 만나 노란 벽돌길(Yellow Brick Road)을 따라 모험을 떠나는 이야기. 그 원작이 19세기 말에 나온 소설이라는 건 위키드를 보고 나서야 제대로 찾아봤습니다.
위키드의 출발점은 1995년에 나온 동명의 2차 창작 소설입니다. 여기서 2차 창작이란 기존 원작의 세계관을 바탕으로 다른 작가가 새로운 시각으로 재해석한 작품을 말합니다. 원작 오즈의 마법사에서 이름조차 없었던 '사악한 서쪽 마녀'에게 엘파바라는 이름을 붙이고, 그녀가 왜 마녀가 될 수밖에 없었는지를 풀어낸 거죠. 허수아비가 왜 허수아비가 됐는지, 양철 나무꾼은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겁 많은 사자의 사연까지 하나하나 설명합니다. 기존 이야기의 빈틈을 메우는 방식으로 훨씬 풍성한 서사를 만들어낸 셈입니다.
이 소설이 2000년대 중반 브로드웨이 뮤지컬로 제작되면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습니다. 오페라의 유령, 레미제라블, 미스 사이공 같은 뮤지컬계의 고전들보다 흥행 성적이 높다는 사실이 그 인기를 단적으로 보여줍니다(출처: Internet Broadway Database). 국내에서도 2013년부터 라이선스 뮤지컬로 제작돼 지금까지 꾸준히 공연 중입니다. 표를 구하기 어렵기로 유명한 작품이기도 하죠.
스크린이 무대를 넘어선 순간, 연출 분석
뮤지컬 영화를 볼 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이 있지 않으신가요? '무대에서 보는 것보다 나을 게 있을까?' 저도 그 의문을 품고 극장에 들어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다릅니다. 더 낫다거나 못하다기보다는 무대와 영화가 각자의 방식으로 다른 전율을 줍니다.
제가 직접 봐서 가장 강하게 남은 장면이 있습니다. 마법학교 입학 초반, 복도에 매달린 금속 조각 장식 사이로 엘파바가 걸어가는 장면입니다. 다양한 빛이 그 금속 조각들을 통과하며 프리즘(Prism) 효과를 만들어내는데, 이 프리즘이란 빛을 여러 색으로 분산시키는 광학 현상으로, 이 장면에서는 엘파바의 녹색 피부가 각도마다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이도록 만듭니다. 녹색 피부는 결국 우리가 보는 하나의 현상일 뿐, 그 사람의 본질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영상 언어로 구현한 연출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방식의 시각적 메타포는 무대에서는 구현이 불가능합니다.
차별과 배제라는 주제를 다루는 방식도 뮤지컬보다 영화가 훨씬 직접적입니다. 엘파바가 피부색을 이유로 왕따를 당하는 초반부 묘사가 세밀하게 이어지면서, 관객이 그 내면의 위축을 함께 느끼게 만듭니다. 저는 그 장면들을 보면서 제 안의 차별 감각을 들여다보게 됐습니다. 편하지 않은 감각이었지만, 그게 이 영화의 힘이기도 합니다.
클라이맥스인 'Defying Gravity'는 어떨지 궁금하셨을 텐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무대에서 배우가 실제로 공중에 솟구쳐 오르는 장면의 전율이 스크린에서도 그대로 전해졌습니다. 신시아 에리보(Cynthia Erivo)의 목소리가 극장 전체를 채우는 순간, 저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가창력이라는 면에서 이 정도 수준을 라이브로 표현해내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두 주연 배우, 각자의 방식으로 완벽했습니다
신시아 에리보의 엘파바는 압도적입니다. 기술적인 가창력을 넘어서 캐릭터의 감정 자체가 목소리에 실립니다. 반면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의 글린다는 제가 직접 보기 전까지 반신반의했던 캐스팅이었는데, 결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고개를 살짝 까딱이는 동작, 능청스러운 표정 하나하나가 글린다라는 캐릭터를 그대로 체화하고 있었습니다. 오디션 단계부터 글린다 역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고 알려져 있는데(출처: Deadline Hollywood), 그 준비의 흔적이 화면에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 신시아 에리보: 엘파바의 분노와 슬픔을 목소리 하나로 표현하는 압도적 가창력
- 아리아나 그란데: 초반 글린다의 허세와 순진함을 몸짓과 표정으로 완벽 구현
- 아쉬운 점: 후반부 진지한 감정 연기에서 글린다의 표정 변화가 다소 제한적으로 느껴졌습니다
- 전체 평가: 두 배우의 케미스트리(Chemistry), 즉 화면 안에서 두 사람이 만들어내는 감정적 상호작용이 이 영화의 핵심 동력입니다
지금 이 영화를 봐야 하는 이유, 관람 추천
뮤지컬 영화라는 장르 자체를 부담스러워하시는 분, 계시죠? 제 주변에도 꽤 있습니다. 그런데 제 경험상 위키드는 뮤지컬 영화에 거리감이 있는 사람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는 힘이 있습니다. 이야기 구조 자체가 탄탄하고, 두 여성의 우정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선이 중심을 잡아주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가 전하는 핵심 메시지는 "누구나 하늘을 날 수 있다"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무엇을 할 수 있다'가 아니라 '누구나'라는 단어입니다. 녹색 피부를 가졌다는 이유로 평생 배척당한 엘파바가 결국 중력(Gravity)을 거부하며 날아오른다는 설정은, 내가 가진 조건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방향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Defying Gravity' 음원을 다시 틀었을 때, 가사가 전혀 다르게 들렸습니다. 제 경우엔 그게 이 영화의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반드시 알고 가셔야 할 정보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1부입니다. 저는 정보 없이 입장했다가 이야기가 점점 깊어지는데 도무지 끝날 기색이 없어서 당황했습니다. 뮤지컬 원작의 1막에 해당하는 내용을 다루고, 'Defying Gravity'로 마무리됩니다. 2부는 2025년 공개 예정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1부를 보고 나면 2부가 기다려지는 게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오히려 극장에서 보고 나와서 뮤지컬 원작을 찾아보게 되는 선순환이 생기기도 하죠.
자주 묻는 질문
Q. 위키드 영화, 뮤지컬을 모르면 이해가 안 되나요?
A. 뮤지컬이나 원작 소설을 전혀 몰라도 이해하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영화 자체가 엘파바의 탄생과 배경을 초반부터 친절하게 설명해주기 때문에, 오즈의 마법사를 모르는 상태에서 봐도 서사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습니다. 다만 원작을 알고 보면 각 캐릭터의 복선이 보여서 더 흥미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위키드 영화 1부, 2부 언제 나오나요?
A. 위키드 1부는 2024년 11월 북미 기준으로 개봉했습니다. 2부는 2025년 11월 공개 예정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원작의 1막과 2막을 각각 한 편의 영화로 나눠서 제작하는 방식입니다.
Q. 아리아나 그란데가 글린다를 잘 소화했나요?
A. 제가 직접 봤을 때 초반부는 예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글린다 특유의 능청스럽고 허세 가득한 캐릭터를 몸짓과 표정으로 완벽하게 구현해서, 보다 보면 '글린다는 아리아나 그란데 말고 다른 사람은 상상이 안 간다'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후반부 감정 연기가 다소 아쉬웠지만, 전체 완성도에 영향을 줄 수준은 아닙니다.
Q. 뮤지컬 위키드랑 영화 위키드, 뭐가 더 나은가요?
A. 둘은 다른 방식으로 각자의 감동을 줍니다. 무대에서 배우가 실제로 공중에 솟구쳐 오르는 'Defying Gravity' 장면은 현장에서 느끼는 전율이 따로 있고, 영화는 카메라 구도와 시각적 연출로 무대에서 불가능한 디테일을 보여줍니다. 가능하다면 둘 다 경험해보시는 걸 권합니다.
결론
위키드 영화에 개인적으로 7점을 주겠습니다. 뮤지컬 영화 장르에서 이 점수를 주는 건 흔한 일이 아닙니다. 줄거리 전달, 시각 연출, 두 주연 배우의 가창력과 캐릭터 해석, 그리고 영화가 품고 있는 메시지까지 어느 하나 손댈 곳이 없는 수작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이 영화가 차별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설교하지 않고 이야기 안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는 점이었습니다. 제 경험상 메시지를 앞세우는 영화일수록 오히려 관객이 멀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위키드는 엘파바의 이야기 자체가 너무 입체적이라 메시지가 억지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2부가 나오기 전에 1부를 보고 뮤지컬 원작까지 찾아보는 코스, 저는 꽤 추천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