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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이름의 기억 탐욕의 얼굴 그리고 소녀의 성장

시네씨 2026. 10. 7. 12:47

목차


    2001년 일본에서 개봉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원작과 각본, 연출을 모두 맡고 스튜디오 지브리가 제작한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이듬해 베를린 국제영화제 금곰상을 받았고 그다음 해에는 아카데미 장편애니메이션상까지 거머쥐었습니다. 이사를 가던 열 살 소녀 치히로가 낡은 터널을 지나 신들이 몸을 씻으러 오는 온천장에 발이 묶이는 이야기는 얼핏 환상 동화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 뒤에는 이름과 노동, 욕망과 오염이라는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가 겹겹이 깔려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이름의 기억, 탐욕의 얼굴, 소녀의 성장이라는 세 갈래로 작품을 읽어 보겠습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이름의 기억

    이야기의 문을 여는 것은 돼지가 된 부모입니다. 아버지는 버려진 거리를 거품 경제 시절에 지어졌다 망한 테마파크쯤으로 여기고, 주인도 없는 식당의 음식을 허락 없이 먹기 시작합니다. 해가 지자 부모는 돼지로 변해 있고, 치히로의 몸은 점점 투명해집니다. 소년 하쿠는 이곳에서 살아남으려면 일을 얻어야 한다고 알려 주고, 치히로는 보일러실의 가마지와 종업원 린을 거쳐 마녀 유바바 앞에 섭니다. 유바바는 계약서에 적힌 오기노 치히로라는 이름에서 글자를 손짓 한 번으로 뽑아 올리고, 남은 한 글자 千을 따서 센이라고 부릅니다. 일자리를 얻는 대가가 이름의 몰수라는 이 장면은 노동 계약이 곧 한 사람의 정체성을 가져가는 장치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하쿠는 이름을 빼앗기면 돌아가는 길을 잊게 된다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치히로는 하쿠가 돌려준 옷 사이에서 친구가 써 준 작별 카드를 발견하고서야 자기 이름을 잊어 가고 있었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하쿠 자신이 바로 그 경고의 증거입니다. 그는 유바바의 제자로 일하며 본래의 이름을 잃어버린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후반부 하늘을 나는 용의 등 위에서 치히로는 어린 시절 신발을 주우려다 빠졌던 코하쿠 강을 떠올리고, 그의 진짜 이름이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라는 것을 불러 줍니다. 그 순간 용의 비늘이 흩어지며 소년의 얼굴이 돌아옵니다. 강은 이미 메워져 아파트가 들어섰지만, 누군가가 기억해 부르는 한 이름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장면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탐욕의 얼굴

    온천장에 오물신이 찾아오는 장면은 작품의 문제의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냅니다. 지독한 악취에 종업원들이 모두 달아나자 유바바는 이 손님을 신참인 센에게 맡깁니다. 약탕에 몸을 담근 손님의 옆구리에서 가시 같은 것을 발견한 치히로가 모두와 함께 밧줄을 당기자 녹슨 자전거를 시작으로 온갖 쓰레기가 끝없이 쏟아져 나옵니다. 오물을 모두 벗겨 낸 손님의 정체는 이름 있는 강의 신이었습니다. 인간이 버린 것들이 신을 괴물로 보이게 만들었다는 설정은 강의 오염에 대한 분명한 우화입니다. 신은 치히로에게 경단 하나를 남기고 떠나고, 바닥에 남은 사금을 보며 가장 기뻐하는 사람은 다름 아닌 유바바입니다.

    탐욕을 한 몸에 비추는 인물은 가오나시입니다. 다리 위에서 말없이 치히로를 바라보던 그는 비 오는 날 열어 둔 문으로 온천장에 들어오고, 몰래 약탕 패를 가져다주며 치히로의 호감을 사려 합니다. 이후 손바닥에서 금을 만들어 보이자 종업원들이 앞다투어 몰려들고, 그는 개구리 종업원을 삼켜 목소리를 얻은 뒤 끝없이 음식을 먹어 치웁니다. 치히로가 금을 거절하는 순간 그는 분노하며 사람들까지 집어삼킵니다. 얼굴도 말도 없는 가오나시는 주변의 욕망을 그대로 흡수해 부풀어 오르는 거울 같은 존재입니다. 치히로가 강의 신에게 받은 경단을 먹이자 그는 삼킨 것을 모두 토해 내고 원래의 조용한 모습으로 돌아옵니다. 괴물을 만든 것은 가오나시가 아니라 금을 좇던 온천장 사람들이었던 셈입니다.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속 소녀의 성장

    영화 초반의 치히로는 차 뒷좌석에서 이사를 투덜대고, 가파른 계단 앞에서 몸을 떨며 주저앉는 평범한 아이입니다. 그런 아이가 스스로 길을 떠나는 계기는 하쿠의 위기입니다. 유바바의 쌍둥이 언니 제니바의 도장을 훔친 하쿠가 저주를 받아 피를 토하자, 치히로는 도장을 돌려주고 사과하기 위해 가마지가 사십 년 동안 간직해 온 전차표를 받아 여섯 번째 역인 늪의 바닥으로 향합니다. 바다 위 전차 장면은 대사가 거의 없이 흘러갑니다. 물에 잠긴 선로 위를 달리는 열차 안에는 반투명한 승객들이 조용히 앉아 있고, 창밖으로는 저무는 바다와 외딴 역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보호자 없이 처음 떠나는 이 여정은 한 아이가 겪는 통과의례를 고요한 이미지로 옮겨 놓은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제니바의 집에서 치히로는 가오나시, 쥐로 변한 유바바의 아들 보와 함께 실을 자아 머리끈을 받고, 용의 모습으로 날아온 하쿠의 이름을 되찾아 줍니다. 돌아온 온천장에서 유바바는 마지막 시험으로 돼지들 가운데 부모를 골라 보라고 하고, 치히로는 이 중에는 부모가 없다고 정확히 답해 계약에서 풀려납니다. 원제의 가미카쿠시는 신에게 숨겨져 사라진다는 뜻이지만, 터널을 되돌아 나오는 치히로는 사라졌던 아이가 아니라 달라진 아이입니다. 결국 이 영화에서 이름은 자신을 잃지 않게 붙드는 기억이고, 탐욕은 얼굴 없는 존재를 괴물로 키우는 힘이며, 성장은 타인의 진짜 이름을 불러 줄 수 있게 되는 일이라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뒤돌아보지 말라는 하쿠의 당부를 지키는 뒷모습에서 관객은 한 소녀가 스스로 걸어 나온 거리를 확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