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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 브랜드 뉴데이 (통과의례, 진 그레이, 성장담)

시네씨 2026. 8. 5. 11:37

목차


    솔직히 말하면 저는 정보를 일부러 차단하고 갔습니다. 예고편도 최소한으로 봤고, 진 그레이가 등장한다는 사실도 몰랐어요. 그래서 극장에서 처음 그 장면을 마주쳤을 때 진짜로 입이 벌어졌습니다.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데이는 아이맥스로 먼저 보고, 여운이 길어 스크린엑스로 한 번 더 볼 계획을 세울 만큼 제 마음속에 오래 머문 영화입니다. 우주를 논하다 갑자기 뉴욕 골목 사이렌 소리로 시야를 좁혀버린 영화, 아쉬움만큼이나 좋았던 그 이유를 정리해 봤습니다.

     

    통과의례 구조로 읽는 피터 파커의 성장담

    20세기 초 인류학자 아르놀트 판 헤네프는 대륙도, 언어도, 신앙도 전혀 다른 세계 각지의 부족 사회가 소년을 어른으로 만드는 방식에서 놀랍도록 동일한 문법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가 이름 붙인 이 3단 구조가 바로 통과의례(rite of passage)입니다. 분리, 전이, 통합의 순서죠.

    여기서 통과의례란 공동체가 한 구성원을 이전 정체성으로부터 끊어내고, 일정한 고통의 시간을 거쳐, 새로운 자격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의식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은 이후 인류학 연구의 핵심 틀이 됐는데(출처: JSTOR 인류학 아카이브), 주목할 만한 건 가운데 단계, 즉 이도저도 아닌 '문지방' 위의 시간입니다. 라틴어로 문지방을 뜻하는 단어에서 이름을 따온 이 리미널리티(liminality) 상태, 쉽게 말해 과거의 나는 이미 죽었고 미래의 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그 어중간한 자리가 핵심입니다.

    5년 전 노웨이 홈이 끝난 지점을 떠올려 보면 어떻습니까. 세상의 모든 기억에서 피터 파커라는 이름이 지워졌습니다. 인류학적 시선으로 보면 이건 저주가 아니라 정확히 통과의례의 첫 번째 단계, 즉 공동체로부터의 분리입니다. 이름을 빼앗기고 사회적으로 죽은 존재가 된 소년이 문지방 위에 올라선 것이죠.

    브랜드 뉴데이는 그 문지방을 건너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영화 초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웹스윙 시퀀스였어요. 1인칭 시점으로 빌딩과 빌딩 사이를 날아다니는 그 감각이,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즐겼던 마블 스파이더맨 게임의 패드 조작감과 정확히 일치했습니다. 제가 직접 게임을 하던 기억이 그대로 살아났을 만큼요. 그런데 이 시퀀스가 단순한 시각적 쾌감을 넘어서 영화가 가려는 방향을 선명하게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우주가 아닌 거리로, 어벤져스의 일원이 아닌 우리 동네 이웃으로 돌아오겠다는 선언이었죠.

    MJ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 한 장을 붙잡고 서성이는 피터의 모습에서는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습니다. 전달하는 순간 확인하게 될 현실, 즉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눈동자와 처음 뵙는다는 인사가 너무 비참해서 차라리 문 앞에서 머무르는 쪽을 택하는 그 심리가 너무 잘 느껴졌거든요. 이 비대칭, 피터는 MJ를 알지만 MJ는 피터를 전혀 모른다는 이 구조가 영화 전반부의 통증을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영화 중반에 피터의 몸이 바뀝니다. 유기 웹슈터(organic web-shooter), 즉 기계 장치가 아닌 신체에서 직접 거미줄이 뿜어져 나오는 이 변화가 등장합니다. 여기서 유기 웹슈터란 피터의 생물학적 변이가 심화되어 손목에서 자체적으로 거미줄을 분비하게 된 상태를 뜻하는데, 2002년 샘 라이미 버전의 그 장면이 떠오른 건 저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이 변화가 동의 없이, 준비도 없이 들이닥친다는 점이 핵심이에요. 성장이 초대장을 보내지 않는다는 것, 제가 이 영화에서 가장 공감한 대목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거미의 탈피 생물학이 이 지점에서 등장하는 것도 예사롭지 않았습니다. 탈피란 거미가 성장하기 위해 낡은 외골격을 벗어내는 과정인데, 새 껍질이 굳기 전까지 거미는 일생에서 가장 취약한 상태에 놓입니다. 탈피에 실패하면 옛 껍질 안에 갇혀 죽습니다. 피터가 통제를 잃고 휘둘리던 몸이 결국 자신을 받아들인 순간, 핸드의 닌자들과의 격투 장면에서 느낀 쾌감은 화력이 아닌 화해에서 왔습니다. 저는 그 장면에서 액션이 곧 심리 묘사가 될 수 있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확인했어요.

    나는 스파이더맨이면서 동시에 피터 파커다. 가면인 페르소나(persona)와 맨얼굴 사이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둘 다를 끌어안는 이 선언, 여기서 페르소나란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 배우가 쓰던 가면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타인에게 보이는 외적 자아를 의미합니다. 피터는 어느 하나를 절단하는 대신 그 모순 전체를 짊어지는 쪽을 선택했고, 저는 그게 이 영화가 말하는 어른이 되는 방식이라고 봤습니다.

    • 통과의례 3단계: 분리(이름 상실) → 전이(리미널리티, 문지방 위의 고통) → 통합(새로운 자격으로 귀환)
    • 유기 웹슈터로의 변화: 장비에서 신체로, 곧 정체성의 외재화에서 내재화로의 전환
    • 페르소나 이분법 해체: 가면 대 맨얼굴의 선택이 아닌 양자 포용이 어른의 몫
    • 액션이 심리 묘사를 대신하는 구조: 핸드 전투 장면이 피터의 내적 화해를 시각화
    요약: 브랜드 뉴데이는 통과의례의 3단 구조를 정확히 따라가며, 원치 않는 변화를 끌어안는 것이 어른이 되는 방식임을 성장담으로 증명한 히어로 영화입니다.

     

    진 그레이와 사라진 계급성, 이 영화의 빛과 그림자

    진 그레이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 저는 진짜로 입을 다물지 못했습니다. 극장 공기가 바뀌는 게 느껴질 정도였어요. 사전 정보를 차단하고 간 덕분에 그 전율이 훨씬 크게 왔습니다. X맨 시리즈를 알고 있는 관객이라면 이 이름이 갖는 무게를 알 겁니다. 텔레파시와 염동력을 지닌 뮤턴트로, 마블 유니버스 전체에서도 손에 꼽히는 규격 외의 존재입니다. 무엇보다 이 캐릭터에는 다크 피닉스 사가(Dark Phoenix Saga)라는 마블 코믹스 역사상 가장 비극적인 서사가 붙어 있습니다(출처: Marvel 공식 사이트).

    여기서 다크 피닉스 사가란 진 그레이가 피닉스 포스라는 우주적 에너지와 합일하여 통제 불능의 존재가 되고, 결국 스스로를 희생하는 이야기를 말합니다. 폭스 스튜디오가 이 사가를 두 번이나 영화화했는데, 2006년 X맨 최후의 전쟁과 2019년 다크 피닉스 모두 이야기를 잃었습니다. 진 그레이라는 존재가 너무 강해 서사가 그쪽으로 전부 구부러져 버리는 특이점 문제가 반복됐던 거죠.

    그러니 제가 그 등장 장면에서 느낀 건 단순한 놀라움이 아니었습니다. 마블이 이걸 어떻게 쓰려는지에 대한 긴장이 더 컸어요. 극 중 인물들이 진 그레이의 위험성을 모른 채 그녀를 함부로 다루는 장면들에서 저는 등줄기가 서늘해졌습니다. 히치콕이 말한 서스펜스의 구조, 테이블 아래에 폭탄이 있는데 관객만 알고 극 중 인물들은 모르는 그 상황이 그대로 구현됐습니다. 진 그레이를 모르는 관객에게는 초능력자 정도로 보이겠지만, 알고 있는 저에게는 전선을 맨손으로 만지는 사람들을 지켜보는 공포였거든요.

    이 숙제를 영화는 완력이 아닌 말로 풀었습니다. 피터와 진의 사연을 나란히 놓는 방식이 영리했어요. 자신이 무엇인지 모르게 된 진 그레이와,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세상이 지워버린 피터 파커. 둘 다 정체성의 혼란 한가운데 서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서로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었고, 그래서 피터만이 진에게 닿을 수 있었다는 설정이 저는 우연이 아니라고 봤습니다. 남들과 다르게 태어난 존재가 그 다름을 저주로 받을 것이냐, 아니면 자기 자신으로 받을 것이냐. X맨 시리즈가 60년째 반복해 온 이 질문이 피터의 성장담에 자연스럽게 접합됐습니다.

    다만 아쉬운 건 분명합니다. 진 그레이라는 이름을 모르는 관객에게는 이 긴장이 절반밖에 전달되지 않았을 겁니다. 테이블 아래의 폭탄을 모른다면 서스펜스가 생기지 않으니까요. 10년 넘게 반복된 MCU의 진입 장벽 문제가 이번에도 유효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고 나서 가장 오래 머릿속을 맴돈 질문이 하나 있었습니다. 이 영화의 피터 파커는 뭘 해서 먹고 삽니까. 1962년 스탠 리와 스티브 딕코가 스파이더맨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이 캐릭터의 혁명은 거미줄이 아닌 지갑에 있었습니다. 슈퍼맨은 외계인이고 배트맨은 재벌이지만, 스파이더맨은 월세를 냅니다. 숙모의 약값을 걱정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며, 자신을 악당으로 매도하는 신문사에 자기 사진을 팔아 생계를 잇는 임금 노동자였습니다. 마르크스가 소외(alienation)라 부른 상태, 즉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 결과물로부터 분리되는 구조를 가장 명료하게 체현한 히어로가 스파이더맨이었어요.

    브랜드 뉴데이는 스스로 고전으로의 회귀를 선언했습니다. 거리로, 이웃으로 돌아왔다고요. 그런데 정작 그 고전의 심장이었던 계급성과 생활고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번듯한 모니터 여러 대, 고급 장비들. 어디서 마련한 건지 두 시간 내내 단 한 번도 설명하지 않았어요. 제가 아는 피터 파커는 길에 버려진 컴퓨터를 주워 밤새 고쳐 쓰는 친구입니다. 노동자 계급의 히어로라는 정체성이 60년간 지켜온 단 하나의 계급적 진심이 이번 영화에서 증발했습니다. 성장을 이야기하면서 생활을 지워버린 것, 그게 제가 이 영화에 가장 아쉬웠던 지점입니다.

    요약: 진 그레이의 등장은 이중 서스펜스를 만들며 영리하게 소화됐지만, 스파이더맨 고유의 계급성과 노동 리얼리즘이 사라진 것은 이 영화가 안고 가는 가장 뚜렷한 빈자리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데이, X맨 몰라도 재밌게 볼 수 있나요?

    A. 충분히 즐길 수 있지만, 진 그레이라는 캐릭터의 무게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은 서스펜스의 체감 강도에서 상당한 차이가 납니다. 제 경험상 X맨 시리즈를 조금만 찾아보고 가면 그 긴장감이 훨씬 크게 다가옵니다. 특히 다크 피닉스 사가의 맥락을 알면 등장 장면에서 느끼는 전율이 완전히 다릅니다.

     

    Q. 유기 웹슈터로 바뀐 게 왜 중요한 변화인가요?

    A. 기존 MCU의 톰 홀랜드 스파이더맨은 토니 스타크가 설계한 기계식 웹슈터를 사용했습니다. 그건 벗을 수 있는 장비였죠. 유기 웹슈터는 신체에서 직접 분비되는 것으로, 이제 스파이더맨이라는 정체성이 장착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상징입니다. 이 한 가지 변화가 이번 영화 전체의 주제를 압축하고 있습니다.

     

    Q. 아이맥스와 스크린엑스 중 어떤 포맷이 더 나은가요?

    A. 제가 아이맥스로 먼저 봤는데, 뉴욕 골목과 옥상을 누비는 웹스윙 시퀀스의 몰입감이 상당했습니다. 스크린엑스는 측면 화면까지 확장되는 방식이라 액션 장면에서 다른 체험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화면 스펙터클보다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다면 아이맥스, 공간적 몰입감을 원한다면 스크린엑스가 제 판단으로는 더 맞을 것 같습니다.

     

    Q. 노웨이 홈보다 재미있나요?

    A. 노웨이 홈 수준의 멀티버스 스펙터클을 기대하고 가신다면 아마 다소 잔잔하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성장담으로서의 완성도와 인간적인 감정선의 깊이는 브랜드 뉴데이가 오히려 앞선다고 저는 봤습니다. 어떤 스파이더맨을 보고 싶으냐에 따라 다른 영화입니다.

     

    결론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데이는 자기가 하려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걸어간 영화였습니다. 회피하던 소년이 현실과 마주했고, 통제할 수 없는 변화를 끌어안았으며, 가면과 맨얼굴 모두를 짊어지기로 했습니다. 문지방을 건너는 이 여정이 저는 히어로 장르 안에서 꽤 모범적인 방식으로 완성됐다고 봤습니다. 평점은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

    다만 다음 작품에서는 꼭 묻고 싶습니다. 문지방을 건너온 이 청년은 어떻게 월세를 내고 있나요. 친절한 이웃의 살림살이까지 보여준다면, 그때 비로소 스파이더맨은 완전히 돌아온 것이라고 저는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xSLIRXz3nm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