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컷 젬스를 본 뒤로 사프디 형제 영화라면 무조건 극장을 찾게 됐습니다. 그 정신없는 질주감이 중독처럼 남아서요. 조시 사프디의 신작 마티 슈프림은 그 기대를 훌쩍 넘었습니다. 1950년대 뉴욕 뒷골목의 허슬러 한 명을 따라가는 이 영화, 제가 극장을 나오면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실존 인물 마티 라이스먼을 검색하는 것이었습니다.

조시 사프디가 탁구공을 고른 이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마티 슈프림이 탁구 영화라는 건 알았는데, 그 탁구가 영화의 주제를 이렇게 정확하게 담아낼 줄은 몰랐거든요.
영화의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은 마티 라이스먼입니다. 1950~60년대 뉴욕에서 활동했던 이 탁구 선수는 단순한 스포츠맨이 아니었습니다. 브로드웨이 탁구장에서 자기 실력을 숨긴 채 상대방이 큰 판돈을 걸게 유도한 뒤 본 실력을 터뜨려 싹 쓸어가는, 전형적인 허슬러였습니다. 허슬러(hustler)란 단순히 열심히 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악바리 근성으로 자수성가하면서도 동시에 사기와 협잡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인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라이스먼은 이 단어의 모든 의미를 몸으로 구현한 사람이었고, 1997년에는 만 67세의 나이로 내셔널 하드뱃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스포츠 역사상 최고령 우승 기록까지 남겼습니다(출처: USA Table Tennis).
조시 사프디가 이 인물에게서 가져온 건 업적이 아니라 캐릭터였습니다. 이름도 마티 마우저로 바꾸고, 역사적 사실은 군데군데만 흩뿌린 채 나머지는 전부 창작으로 채웠습니다. 그가 그리고 싶었던 건 전기 영화가 아니라, 1950년대 맨해튼 동부 빈민가 유대인 마을의 공기와 그 속에서 폭주하는 한 인간의 내면이었으니까요.
제가 특히 감탄했던 건 오프닝 타이틀 시퀀스였습니다. 수억 마리의 정자가 날아가다 난자와 만나는 순간, 그 난자가 탁구공 모양으로 변하면서 '마티 슈프림'이라는 타이틀이 떴습니다. 극장에서 혼자 "아" 소리를 뱉을 뻔했어요. 이 장면 하나가 영화 전체의 주제를 다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탁구공이라는 물체의 특성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됩니다. 작고 바운스가 일정하며, 숙련된 사람이라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정확히 보낼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기에 가장 적합한 물건이죠.
탁구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야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출처: International Olympic Committee). 1950년대 당시엔 생활 스포츠에서 메이저 스포츠로 막 발돋움하던 시기였고, 넓은 공간이 필요 없어 뒷골목 내기판에서도 쉽게 열 수 있었습니다. 마티가 자신의 사기 무대로 탁구를 고른 건 이 시대적 맥락과 정확히 맞아떨어집니다.
- 마티 라이스먼: 뉴욕 출신의 실존 탁구 허슬러, 1997년 67세 최고령 우승 기록 보유
- 영화 속 이름 마티 마우저로 변경 — 실존 인물 전기가 아닌 캐릭터 차용임을 명시
- 탁구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 1950년대엔 뒷골목 내기 스포츠에 최적
- 오프닝 정자→탁구공 타이틀 시퀀스: 통제 환상이라는 주제를 시각적으로 압축
액션 멈블코어, 그리고 티모시 샬라메의 폭주
제가 직접 영화를 보면서 느낀 건 이겁니다. 상영 내내 마티 옆에 묶여 있는 느낌이었어요. 도망가고 싶은데 눈을 뗄 수가 없는, 그 묘한 긴장감이요.
이건 사프디 형제 특유의 연출 방식인 멈블코어(mumblecore) 덕분입니다. 멈블코어란 배우들이 또렷하게 대사를 치지 않고 웅얼거리거나 말을 흐리거나 망설이며 실제 대화처럼 연기하는 스타일입니다. 여기서 ○○란 식으로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말을 더듬고 문장을 흐리는 그 순간, 그 민망하고 어색한 공감성 수치가 코미디가 되는 방식입니다. 굿 타임의 로버트 패틴슨도, 언컷 젬스의 아담 샌들러도 이 방식으로 연기했고, 마티 슈프림의 티모시 샬라메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조시 사프디는 여기에 익스트림 클로즈업을 더합니다. 익스트림 클로즈업이란 카메라가 인물의 얼굴 바로 앞까지 당겨져, 관객이 그 인물과 거의 코가 닿을 듯한 거리에서 감정을 공유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지면 관객은 강제로 마티의 내면에 던져집니다. 제가 액션 멈블코어라는 표현을 좋아하는 건, 인물들이 웅얼거리며 정신없이 내달리는 그 에너지를 카메라가 바짝 붙어 쫓아가기 때문입니다.
영화 속 마티 마우저는 실존 인물보다 열 배쯤 더 개차반입니다. 남의 아내를 건드려 임신을 시키고, 어리바리한 친구 아버지의 재산을 끌어들이고, 삼촌의 금고를 털어 무단으로 영국 탁구 월드 챔피언십에 출전합니다. 그러면서도 철석같이 믿습니다. 내가 우승하기만 하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요. 이게 이 인물의 핵심입니다. 실제로 세계 최고 수준의 실력을 갖고 있지만, 그 능력을 훨씬 초과하는 자의식과 나르시시즘이 문제를 키웁니다. 그리고 본인도 그 사실을 어느 정도 알기 때문에 오히려 행동을 더 크게, 더 과하게 합니다. 약점을 감추기 위해 더 세게 밀어붙이는 전형적인 패턴이죠.
영국 챔피언십 결승에서 마티는 일본 선수에게 집니다. 당시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스펀지를 삽입한 새로운 구조의 탁구 라켓을 개발해 대회에 들고 나왔습니다. 기존 샌드페이퍼만 붙인 원목 라켓과는 전혀 다른 타구감과 회전을 만들어내는 이 라켓은, 마티가 통제할 수 없는 변수였습니다. 세상이 내 예상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걸 마티는 이 순간 처음으로 실감합니다.
코엔 형제의 영화가 인물들과 거리를 두며 세상의 무질서를 건조하게 보여준다면, 사프디의 영화는 그 무질서 한가운데 관객을 밀어 넣습니다. 이 차이가 제가 마티 슈프림 상영 내내 마음이 쪼그라들면서도 눈을 뗄 수 없었던 이유입니다. 티모시 샬라메가 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감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영화 끝날 때쯤엔 온몸으로 납득하게 됩니다. 능력 이상의 확신으로 세상을 밀어붙이다 사면초가에 몰리는 남자, 그 불안과 강박을 샬라메는 단 한 순간도 힘을 뺀 적 없이 밀어붙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마티 슈프림, 언컷 젬스 재미있게 본 사람이면 볼 만한가요?
A. 제 경험상 언컷 젬스를 재미있게 봤다면 마티 슈프림은 그보다 확실히 한 단계 더 재밌습니다. 정신없는 질주감은 비슷하되, 주인공의 실력이 실제로 뒷받침되어 있어 응원하는 마음이 더 강하게 생깁니다. 단, 차분하고 정서적인 영화를 선호하신다면 이 스타일이 스트레스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Q. 마티 슈프림은 실화 기반 전기 영화인가요?
A. 실존 인물 마티 라이스먼에게서 캐릭터를 가져왔지만, 전기 영화와는 거리가 멉니다. 이름도 마티 마우저로 바꾸었고 역사적 사실은 일부만 반영했습니다. 조시 사프디가 원한 건 1950년대 뉴욕의 분위기와 통제 집착이라는 인간 본질을 담는 것이었지, 라이스먼의 삶을 충실히 재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Q. 멈블코어가 뭔지 모르는데 영화 따라가기 어렵지 않나요?
A. 멈블코어는 배우들이 웅얼거리고 말을 흐리며 실제 대화처럼 연기하는 스타일입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헷갈릴 수 있지만, 오히려 그 어색함과 빈틈에서 웃음이 터지는 구조라 익숙해지면 빠져듭니다. 제가 처음 굿 타임을 봤을 때도 15분쯤 지나서야 이 방식에 적응됐던 기억이 납니다.
Q. 티모시 샬라메가 아카데미 후보에 오른 이유가 뭔가요?
A. 단순히 에너지가 넘치는 연기가 아니라, 과잉 행동 이면에 숨겨진 불안과 강박을 동시에 살린 점이 특별합니다. 허풍과 자신감으로 무장했지만 그 안에서 스스로도 의심하고 있다는 결이 느껴지는 연기였는데, 그 미묘한 균형이 관객을 마티에게 계속 붙잡아두는 힘이었습니다.
결론
영화관을 나오면서 저는 이 생각을 했습니다. 마티가 그렇게 거칠게 살았는데 왜 완전히 망하지는 않았을까. 조시 사프디의 대답은 냉정합니다. 세상은 인과응보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그 불공정함이 오히려 세상의 진짜 모습이라는 것. 그 결론이 찜찜하면서도 납득이 됐습니다.
마티 슈프림은 정신없이 웃다 보면 어느새 인간의 허영과 통제 집착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맛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사프디 형제 영화가 낯선 분이라면 넷플릭스에서 언컷 젬스를 먼저 보고 극장으로 가시길 권합니다. 제가 그 순서로 봤고, 덕분에 마티 슈프림을 훨씬 깊게 즐길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