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억 달러. 마이클 잭슨의 전기영화 <마이클>이 들고 나온 숫자입니다. 극장 예매를 누르면서 솔직히 기대 반, 의심 반이었습니다. 보헤미안 랩소디 때처럼 "아, 이게 팬무비구나" 싶은 결말을 예감했거든요. 그래도 마이클 잭슨이니까, 갔습니다.

이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부터 알아야 합니다
영화 <마이클>의 제작 구조를 먼저 짚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걸 모르고 보면 영화가 왜 이런 방향으로 흘러가는지 납득하기 어렵거든요.
이 영화의 핵심 제작자는 그레이엄 킹입니다. 바로 <보헤미안 랩소디>를 만든 그 프로듀서예요. 그는 2018년 <보헤미안 랩소디> 흥행 직후 마이클 잭슨의 유산 관리 재단인 이스테이트(Estate)와 접촉을 시작했고, 2019년부터 본격적으로 제작 권리를 확보해 이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각본가 존 로건, 제작사 GK 필름, 그리고 마이크 마이어스가 CBS 레코드 사장 월터 예트니코프 역으로 출연하는 것까지, 구조적으로 <보헤미안 랩소디>의 연장선 위에 있는 영화입니다.
포스터에 "보헤미안 랩소디 제작진"이라는 카피가 박혀 있는데, 제가 처음 봤을 때 솔직히 좀 실망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IP(지식재산권, 즉 특정 창작물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손에 쥐고 있으면서 겨우 그 카피밖에 못 뽑아냈다는 게, 뭔가 이 영화의 야망을 스스로 한계 짓는 느낌이었거든요.
더 중요한 것은 이 제작진이 무엇을 목표로 삼는지가 처음부터 분명하다는 점입니다. 이들의 지향점은 상업적 성공 하나입니다. 마이클 잭슨의 열성 팬덤을 자극하고, 불필요한 잡음을 피하고, 히트곡 메들리로 극장을 채우는 것. 그 방향으로만 대가리가 돌아가는 제작 방식이라고, 저는 영화를 보고 나서 확신했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이 여러 차례 미뤄졌는데, 그 과정에서 이스테이트 측이 어떤 장면을 넣고 빼는지에 깊이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알려져 있습니다. 한때 촬영까지 완료됐던 3부의 핵심 에피소드들, 즉 아동 성학대 혐의 소송과 관련된 장면들이 통째로 엎어졌다는 얘기도 들립니다. 제 생각에 이건 단순한 편집 이슈가 아닙니다. 처음부터 그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던 거라고 봅니다.
- 제작자 그레이엄 킹: <보헤미안 랩소디>와 동일 인물, 2019년부터 기획
- 이스테이트(Estate): 마이클 잭슨 사후 유산을 관리하는 재단, 영화 내용에 강하게 관여
- 감독은 <보헤미안 랩소디>의 브라이언 싱어가 아닌 안톤 호크로 교체됨
- 마이크 마이어스가 CBS 레코드 사장 월터 예트니코프 역으로 두 영화 모두 출연
공연 재현의 퀄리티와 서사의 온도 차이
영화의 척추는 마이클과 아버지 조셉 잭슨의 갈등입니다. 조셉은 인디애나 게리의 흑인 빈민가 출신으로, 자식들에게서 음악 재능을 발견하고 잭슨 파이브(Jackson 5)라는 가족 밴드를 조직합니다. 잭슨 파이브란 조셉 잭슨의 자녀들로 구성된 실제 밴드로, 1960년대 말 모타운 레코드를 통해 데뷔한 전설적인 그룹입니다.
문제는 그의 교육 방식입니다. 영화에서도 드러나지만, 조셉의 훈육은 위플래시(Whiplash)의 플레처 교수급 폭압이 아버지라는 혈육 안에 갇혀 있는 구조였습니다. 위플래시란 2014년 개봉한 영화로, 극한의 폭압적 교육을 통해 재능을 갈아붙이는 스승과 학생의 관계를 다룬 작품입니다. 여기서 다른 점은, 플레처 교수가 싫으면 학교를 그만두면 그만이지만 조셉은 벗어날 수 없는 혈육이라는 것이죠.
제가 이 부분에서 영화가 굉장히 아쉬웠던 건, 이 갈등 구조가 너무 직선적이기 때문입니다. 조셉은 그냥 나쁜 아버지로만 그려집니다. 그리고 마이클은 사랑과 평화를 말하는 성자처럼 묘사되죠.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아무리 팬무비라도 인간 마이클 잭슨의 굴절된 내면, 즉 어린 시절 단 한 번도 정상적인 유년기를 누리지 못하고 노래하는 기계로만 살았던 그 결핍이 제대로 표현됐어야 하는데, 영화는 그걸 건드리다가 멈춥니다.
반면 공연 재현 장면은 전혀 다른 이야기입니다. 잭슨 파이브 시절의 어린 마이클이 무대에서 노래하는 장면을 극장에서 봤을 때, 저는 예상보다 훨씬 강하게 가슴이 올라오는 걸 느꼈습니다. 마이클 역을 맡은 자파르 잭슨(Jaafar Jackson)은 실제 마이클의 조카로, 그가 삼촌의 움직임과 음색을 재현해내는 방식에서는 혈육만이 가진 어떤 감각이 느껴졌습니다. 실제 마이클의 목소리와 자파르의 목소리를 정교하게 합성한 사운드 처리 방식도 인상적이었고요.
그러나 이 공연 장면들이 서사와 자연스럽게 이어지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한 한계입니다. 바즈 루어만 감독의 <엘비스>를 보면, 라스베이거스 말년의 공연 장면이 엘비스 프레슬리 개인의 비극과 완벽하게 맞물려 있습니다(출처: IMDb - Elvis (2022)). 음악이 서사를 밀고 나가는 역할을 하는 거죠. <마이클>의 공연 장면들은 그 자체로 압도적이지만, 마치 유튜브 공연 실황을 뚝 떼다 붙여놓은 것처럼 서사와 따로 놉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의 편집은 두 가지 감상 경로를 만들어냅니다. 서사에 집중하려는 사람에게는 피로감을, 음악만 즐기러 온 사람에게는 최고의 콘서트를 선물하는 구조입니다.
이 영화를 어떻게 봐야 후회가 없을까
결국 이 영화를 어떻게 소비할 것인가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전기 영화(biographical film, 실존 인물의 생애를 극화한 영화 장르)로서의 가치를 기대하고 갔다면 실망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간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솔직히 별로 없었거든요. 제가 이미 알고 있던 것들 외에는요.
그 점에서 지금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다큐멘터리 두 편이 오히려 낫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This Is It>과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이라 불리는 위아더월드(We Are the World) 녹음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있는데, 이 두 편을 보면 마이클 잭슨이라는 인간을 훨씬 다각도로 만날 수 있습니다(출처: Netflix). 극영화가 고의적으로 탈색시킨 부분들을 있는 그대로 채워주는 느낌이랄까요.
그렇다고 이 영화를 아예 볼 필요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제 경우엔 후반부 공연 장면이 끝나고 극장을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Billie Jean'을 찾아 들었고, 며칠 동안 마이클 잭슨의 공연 영상을 정주행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을 음악으로만 알던 사람들에게, 혹은 그의 무대를 스크린에서 최고 사운드 퀄리티로 다시 경험하고 싶은 팬들에게는 분명한 가치가 있습니다.
단, 아래 기준으로 접근 방식을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 전기 영화로서 보고 싶다면: 기대치를 낮추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를 먼저 보고 가는 것을 권합니다
- 마이클 잭슨 팬이라면: 서사는 흘려듣고 공연 장면에 집중하면 최고의 경험이 됩니다
- 마이클 잭슨을 처음 접한다면: 잭슨 파이브부터 솔로 전성기까지 흐름을 잡는 입문서로 충분히 활용할 수 있습니다
영화 <마이클>은 2편 제작이 이미 들어갔다고 합니다. 1편이 어린 시절과 잭슨 파이브 시절 중심이었다면, 2편에서는 솔로 전성기와 그를 둘러싼 논란들을 어떻게 다룰지가 관건입니다. 솔직히 제 경험상 이 제작진이 2편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시선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낮아 보입니다. 하지만 마이클 잭슨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상, 어떤 퀄리티로 나오더라도 극장에서 확인하게 될 것 같다는 예감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영화 마이클에서 마이클 잭슨 역은 누가 했나요?
A. 실제 마이클 잭슨의 조카인 자파르 잭슨(Jaafar Jackson)이 맡았습니다. 혈육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다른 배우에게서는 나올 수 없는 감각이 있고, 피나는 준비를 한 흔적도 역력합니다. 다만 오리지널 마이클 잭슨의 재능과 비교하면 어쩔 수 없이 차이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Q. 영화에서 마이클 잭슨의 아동 성학대 혐의 논란은 다루나요?
A. 이번 1편에서는 사실상 다루지 않습니다. 촬영까지 완료했던 관련 장면들이 편집 과정에서 삭제됐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FBI가 수사 후 아무런 혐의점을 찾지 못했다고 공식 발표한 사실은 있지만, 영화는 이 부분 전체를 건너뜁니다. 2편에서 다뤄질지 여부는 아직 불확실합니다.
Q. 마이클 잭슨 영화 말고 그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다른 콘텐츠가 있나요?
A.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는 <마이클 잭슨의 This Is It>과 위아더월드 녹음 현장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인간 마이클 잭슨을 훨씬 다면적으로 보여줍니다. 극영화보다 실제 기록 필름을 바탕으로 한 다큐멘터리가 더 솔직하다는 게 제 판단입니다.
Q. 보헤미안 랩소디를 좋아했다면 마이클도 재밌게 볼 수 있나요?
A. 같은 제작자가 만들었고 팬무비적 문법도 유사하지만, 감독이 다르고 연출 방식도 차이가 있습니다. 공연 재현의 기술적 완성도는 마이클이 한 단계 높다는 게 제 경험입니다. 다만 서사의 완성도나 감정적 몰입감은 <보헤미안 랩소디> 쪽이 조금 더 균형 잡혀 있다고 느꼈습니다.
결론
이 영화를 한 줄로 정리하면, 세상에서 가장 비싸고 정교하게 만들어진 팬무비입니다. 마이클 잭슨이라는 20세기와 21세기를 관통하는 팝(Pop), 즉 대중음악의 가장 넓은 바다를 지칭하는 장르의 절대적 아이콘을 소재로 삼았기에, 2억 달러를 들이고도 팬무비로 마무리하는 것이 어쩌면 가장 현실적인 선택이었을 겁니다. 제 경우엔 영화를 보는 동안 두 가지 감정을 동시에 느꼈는데, 공연 장면 앞에서는 무장해제, 서사 장면 앞에서는 아쉬움이었습니다. 이 두 감정이 번갈아 오는 게 이 영화의 정체입니다.
마이클 잭슨이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 지났고, 그를 기억하는 방식도 세대마다 달라졌습니다. 스트리밍으로 처음 그의 음악을 만난 젊은 세대에게는 분명히 좋은 입문서가 됩니다. 반면 그의 무대를 기억하고 있는 세대에게는 익숙한 감동을 더 선명한 화질과 사운드로 다시 만나는 경험이 될 겁니다. 어느 쪽이든, 영화관을 나오면서 마이클 잭슨의 음악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제 역할을 다한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