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눈 둘 데가 없네 (홍상수, 72분, 관람팁)

시네씨 2026. 9. 19. 08:53

목차


    홍상수 감독의 35번째 장편 '눈 둘 데가 없네'가 10월 21일 개봉합니다. 러닝타임은 72분, 12세 이상 관람가입니다. 국내 보도는 대부분 로카르노 3관왕에서 멈춰 있는데, 공개된 메인 포스터를 확대해 보니 기사에 없던 정보가 두 가지 더 있었습니다. 저는 그 두 가지 때문에 이 영화를 보는 순서를 다시 짰습니다. 관람팁까지 정리해 두겠습니다.



    홍상수의 35번째 장편, 로카르노에서 무엇을 받았나

    지난 8월 제79회 로카르노영화제에서 이 영화는 세 개의 상을 받았습니다. 감독상(Pardo for Best Direction), 최우수연기상(Pardo for Best Performance), 그리고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입니다. 여기서 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Ecumenical Jury Prize)은 영화제 본심사위원단이 아니라 별도로 구성된 종교계 심사위원단이 주는 상입니다. 인간의 존엄이나 영적인 질문을 다룬 작품에 주로 돌아갑니다.

    저는 이 세 번째 상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앞의 두 상은 만듦새와 연기에 대한 평가지만, 에큐메니컬상은 "이 영화가 무엇을 묻고 있는가"에 대한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술자리 대화와 어긋난 감정으로 기억되는 감독의 영화가 윤리적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읽혔다는 뜻입니다.

    경쟁 부문의 정식 명칭은 국제경쟁(Concorso Internazionale)입니다. 로카르노영화제에서 가장 무게가 실리는 본선 부문이고, 이곳에서 주는 최고상이 황금표범상입니다. 감독상은 그 바로 아래 자리입니다.

    감독상 심사평은 "영화의 모든 요소를 다루는 최고의 기량이 최고의 자유, 최고의 단순함, 그리고 최고의 지성과 만날 때"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김민희의 연기상 심사평은 "그녀의 연기는 세상을 향한 순수한 존재감 그 자체이다"였습니다. 두 문장 모두 기교가 아니라 덜어냄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약: 감독상·최우수연기상·에큐메니컬 심사위원상 세 부문 수상이며, 세 번째 상은 작품이 던지는 질문에 대한 평가라는 점에서 성격이 다릅니다.

     

    72분 안에 들어간 설정 — 제주도, 그리고 카메라를 든 두 사람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부모가 이혼한 뒤 조부모 손에 자란 상희(김민희)가 남동생과 함께 10년 전 마지막으로 본 어머니를 찾아 제주도로 향합니다. 그곳에서 어머니(최명길)의 새 남편과 그의 딸을 만나게 됩니다. 출연은 김민희, 최명길, 권해효, 신석호, 박미소입니다.

    국내 기사에서는 여기까지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해외 영화제 소개에는 한 줄이 더 붙어 있습니다. 상희의 직업이 실험영화 감독이라는 설정입니다. 실험영화(experimental film)란 이야기 전달보다 이미지와 형식 자체를 실험하는 영화를 말합니다. 상업 극영화의 문법을 일부러 비켜 가는 쪽입니다.

    더 눈에 띄는 건 어머니의 새 남편도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한 집 안에 카메라를 든 사람이 둘 있는 셈입니다. 홍상수 영화에서 영화를 만드는 인물은 늘 감독 자신의 그림자였는데, 이번에는 그 자리를 김민희가 맡았습니다. 저는 이 배치가 이 영화의 제목과 직접 연결된다고 봅니다. 볼 것을 찾아 카메라를 드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 정작 눈 둘 데를 잃는 상황이니까요.

    72분이라는 길이도 그냥 짧은 게 아닙니다. 인물과 장소를 최소한으로 줄여 놓고 대사와 시간만 남기는 후기작의 방식입니다. 제주도라는 공간은 그 최소 조건에 잘 맞습니다. 서울에서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어야 10년 만의 재회가 성립하기 때문입니다.

    요약: 주인공이 실험영화 감독이고 어머니의 새 남편은 다큐멘터리 작업자라는 설정이, 72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과 제목을 잇는 열쇠로 보입니다.

     

    포스터를 확대해 보고 알게 된 것들

    9월 11일 공개된 국내 메인 포스터는 해먹에 누워 눈을 감은 김민희의 얼굴을 화면 가득 담고 있습니다. 상단에는 월계관 모양의 로렐(laurel)이 세 개 찍혀 있습니다. 로렐이란 영화제 수상이나 공식 초청을 표시하는 잎사귀 모양 엠블럼입니다.

    왼쪽 두 개는 로카르노의 표범 문양이 들어간 79회 로렐입니다. 문제는 세 번째입니다. 검은색으로 찍힌 그 로렐에는 뉴욕영화제 64회, 2026 공식 초청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국내 기사 어디에서도 이 대목을 보지 못했습니다.

    확인해 보니 이 작품은 제64회 뉴욕영화제 메인 슬레이트에 북미 프리미어로 올라 있습니다. 메인 슬레이트(Main Slate)는 뉴욕영화제의 중심 상영작 라인업을 가리키고, 북미 프리미어(North American Premiere)는 북미 지역에서 처음 공개된다는 뜻입니다. 상영은 9월 말과 10월 초에 걸쳐 잡혀 있고, 북미 배급은 시네마 길드가 맡았습니다.

    여기서 관람 계획이 달라집니다. 국내 개봉일인 10월 21일보다 뉴욕 상영이 앞서기 때문에, 개봉 전에 이미 영어권 평이 상당수 풀려 있을 겁니다. 저는 평을 미리 읽는 편이 손해라고 보는 쪽이라, 개봉 전에는 검색을 자제할 생각입니다.

    포스터 하단 크레딧도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각본·감독·촬영·녹음·편집·음악이 전부 홍상수 한 사람 이름입니다. 제작실장은 김민희, 제작부와 녹음조수는 양수미입니다. 이름이 있는 스태프가 사실상 셋입니다.

    • 각본·감독·촬영·녹음·편집·음악 — 홍상수
    • 제작실장 — 김민희 (주연 겸임)
    • 제작부·녹음조수 — 양수미
    • 제작 및 배급 — 영화제작전원사, 콘텐츠판다

    72분짜리 영화가 왜 그렇게 조용한 화면을 갖는지, 이 크레딧 세 줄이 설명해 줍니다. 조명팀도 미술팀도 없는 현장에서 나올 수 있는 화면은 애초에 정해져 있습니다. 화면이 소박하다는 지적은 이 영화에 대해서는 비판이 아니라 조건에 가깝습니다.

    요약: 포스터의 세 번째 로렐은 제64회 뉴욕영화제 공식 초청이며, 크레딧에 이름이 오른 스태프가 사실상 세 명이라는 점이 화면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관람팁 — 추천하는 분과 말리고 싶은 분

    먼저 상영관 문제입니다. 이 감독의 작품은 개봉 규모가 작고 회차가 빠르게 줄어듭니다. 개봉 첫 주를 놓치면 집 근처에서 볼 수 있는 시간대가 평일 오전 한 회차만 남는 일이 흔합니다. 보실 생각이 있다면 10월 21일부터 첫 주말까지가 사실상 유일한 기회라고 보는 편이 안전합니다.

    두 번째는 러닝타임에 대한 기대치입니다. 72분은 일반 상업영화의 절반을 조금 넘는 길이입니다. 이야기가 매듭지어지기를 기대하고 앉으면 끝났다는 자막이 이르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저는 이런 영화를 볼 때 결말을 기다리지 않고 장면 사이의 공백을 보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고 들어갑니다.

    추천하고 싶은 쪽은 이렇습니다. 가족이라는 관계가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는 이야기를 견딜 수 있는 분, 대사가 겉돌다가 한 번씩 정확해지는 순간을 즐기는 분, 그리고 김민희의 연기를 오래 지켜봐 온 분입니다. 김민희는 2017년 제67회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밤의 해변에서 혼자'로 은곰상 여자연기자상을 받은 배우입니다. 그로부터 9년 뒤의 연기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비교해 볼 만합니다.

    반대로 말리고 싶은 쪽도 분명합니다. 사건이 분명하게 굴러가는 영화를 원하시는 분, 러닝타임 대비 티켓값이 아깝다고 느끼실 분, 제주도 풍경을 기대하시는 분입니다. 이 영화의 제주는 관광지가 아니라 서울에서 멀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한 거리에 가까워 보입니다.

    마지막으로 준비 팁 하나를 덧붙이겠습니다. 예고편을 반복해서 보는 것보다, 감독의 최근작 한 편을 미리 보고 가는 편이 도움이 됩니다. 이 감독의 영화는 개별 작품보다 연속된 작업으로 읽을 때 훨씬 잘 들어옵니다. 저는 12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만 보고 가볍게 볼 영화로 판단하지는 않으시기를 권합니다. 등급이 낮은 건 자극이 없기 때문이지 쉽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약: 개봉 첫 주가 사실상 유일한 관람 기회이며, 72분과 12세 관람가라는 표면 정보만 보고 가벼운 영화로 판단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홍상수 감독 영화를 한 번도 안 봤는데 이 작품부터 봐도 괜찮을까요?

    가능하지만 권하지는 않습니다. 72분이라 진입 장벽이 낮아 보여도, 설명을 생략하는 방식 자체가 이 감독의 문법입니다. 최근작 한 편을 먼저 보고 오시면 체감이 크게 달라질 것으로 보입니다.

     

    Q. 로카르노 3관왕이면 어느 정도 수준의 수상인가요?

    로카르노영화제는 칸, 베니스, 베를린 다음으로 꼽히는 유럽의 주요 영화제입니다. 국제경쟁 부문에서 감독상과 연기상을 동시에 가져간 것은 작품과 배우 양쪽이 함께 인정받았다는 뜻입니다.

     

    Q. 상영관이 적다는데 어디서 볼 수 있나요?

    예술영화 전용관과 대형 멀티플렉스의 일부 지점 위주로 걸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개봉일에 맞춰 예매 사이트에서 지역을 넓게 잡고 검색해 보시는 편이 확실합니다.

     

    Q. 12세 이상 관람가면 아이와 같이 봐도 되나요?

    등급상으로는 가능합니다. 다만 사건보다 관계의 미묘한 감정이 중심이라 지루해할 가능성이 큽니다. 등급이 낮다는 게 이해하기 쉽다는 뜻은 아닙니다.

     

    Q. 해외에서 먼저 공개되나요?

    그렇습니다. 제64회 뉴욕영화제 메인 슬레이트에 북미 프리미어로 초청돼 국내 개봉보다 앞서 상영됩니다. 사전 정보를 피하고 싶으시다면 개봉 전 영어권 리뷰 검색은 삼가시는 편이 좋습니다.

     

    결론

    로카르노 3관왕이라는 수식보다 제가 더 유용하다고 느낀 정보는 포스터 안에 있었습니다. 뉴욕영화제 로렐, 이름이 셋뿐인 크레딧, 그리고 주인공이 실험영화 감독이라는 설정입니다. 이 세 가지를 알고 들어가면 72분이 짧게 느껴지지 않을 겁니다. 개봉은 10월 21일, 상영관은 빠르게 줄어듭니다. 보실 생각이라면 첫 주말 예매부터 잡아 두시기 바랍니다.

    출처: 연합뉴스
    출처: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