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카테고리 없음

가능한 사랑 (베니스, 넷플릭스, 관람 팁)

시네씨 2026. 9. 8. 05:21

목차


    개봉일을 달력에 적어 두는 편인데, 이번엔 적어 놓고도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가능한 사랑은 9월 23일 극장에 걸리고 11월 6일이면 넷플릭스에 올라옵니다. 베니스에서 이미 뚜껑이 열렸고 점수까지 다 나와 버린 상태라, 극장에 갈지 여섯 주를 기다릴지부터 정해야 했습니다.



    베니스에서 먼저 열린 뚜껑

    이창동 감독이 버닝 이후 8년 만에 내놓은 작품입니다. 현지 시간 9월 6일 제8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공개됐습니다. 월드 프리미어란 전 세계 어디에서도 상영된 적 없는 작품을 처음 트는 자리를 말합니다. 경쟁부문은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놓고 겨루는 자리이고, 올해는 이 작품을 포함해 스물한 편이 경합합니다.

    상영 직후 반응이 뜨거웠다는 소식이 먼저 왔습니다. 흥미로운 건 기립박수 시간이 매체마다 다르게 적혔다는 점입니다. 어디는 6분이 넘었다고 했고 어디는 약 7분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숫자를 작품성 지표로 읽는 습관에 늘 회의적입니다. 재기 시점부터 제각각인 데다 베니스의 기립박수는 관례에 가까운 면이 있어서, 몇 분이었는지보다 설경구와 조인성이 눈물을 닦았다는 장면 묘사가 오히려 정보에 가깝다고 봅니다.

    숫자로 남은 평가는 따로 있습니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 100퍼센트, 메타크리틱 96점입니다. 신선도 지수는 평론 가운데 긍정 평의 비율을, 메타크리틱은 평점을 가중해 평균 낸 값을 뜻합니다. 버라이어티는 위트와 영혼과 사회적 통찰을 함께 담아냈다고 했고, 할리우드 리포터는 현대 사회의 경제적·감정적 불안을 파고드는 조용하지만 강력한 작품이라고 적었습니다. 전도연의 연기를 두고는 백 년에 한 번 나올 법하다는 표현까지 나왔습니다.

    일정을 짚어 두면 유용합니다. 황금사자상 수상작은 9월 12일 폐막식에서 발표됩니다. 국내 개봉이 9월 23일이니, 수상 여부를 알고 나서 극장에 가는 순서가 됩니다. 상을 받든 못 받든 그 결과가 관람 전 기대치를 흔들 텐데, 이 점을 미리 알고 있는 편이 낫습니다. 출처: 라 비엔날레 디 베네치아 공식

    요약: 9월 6일 베니스 경쟁부문 월드 프리미어, 로튼토마토 100퍼센트에 메타크리틱 96점, 수상 발표는 국내 개봉 열하루 전인 9월 12일입니다.

     

    넷플릭스까지 여섯 주, 그 간격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작품은 넷플릭스 오리지널입니다. 그런데도 극장을 먼저 거칩니다. 9월 23일 극장, 11월 6일 넷플릭스. 극장 개봉과 다른 플랫폼 공개 사이의 유예 기간을 홀드백이라고 부르는데, 이번 홀드백은 여섯 주 남짓입니다. 예전 한국 영화의 부가판권 유예가 몇 달 단위였던 걸 떠올리면 짧은 편입니다.

    여섯 주만 기다리면 집에서 볼 수 있는데 굳이 극장에 가야 하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도 그 계산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 작품에 한해서는 한 번 더 따져 볼 여지가 있다고 봅니다. 할리우드 리포터가 이 영화를 실내극에 가깝게 묘사했다는 점이 근거입니다. 실내극은 제한된 공간과 소수의 인물로 밀도를 만드는 형식을 뜻합니다. 폭발음이나 거대한 화면으로 극장값을 정당화하는 종류의 영화가 아니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극장에 돈을 내는 이유가 화면 크기가 아니라 다른 데 있게 됩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침묵이 길고 인물의 표정을 오래 붙잡습니다. 그 시간을 견디는 게 관람의 핵심인데, 집에서는 그 대목에서 휴대폰을 집게 됩니다. 저는 버닝을 집에서 다시 보다가 중간에 두 번 멈췄고, 그때 영화가 무너지는 걸 경험했습니다. 극장에서 지불하는 값은 결국 중간에 끊지 못하게 만드는 구속이라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이렇게 정리할 수도 있습니다. 두 시간 동안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11월 6일이 훨씬 경제적입니다. 판단 기준은 취향이 아니라 자기 시청 습관에 있다고 봅니다.

    한 가지 더 알아 둘 점은 상영 규모입니다. 공개된 국제판 포스터에는 북미 상영이 제한 상영으로 표기돼 있습니다. 국내 상영관 규모는 개봉이 임박해야 드러나겠지만, 넷플릭스 오리지널이라는 조건상 일반적인 대작만큼 스크린이 깔린다고 단정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관람을 마음먹었다면 예매 시작 시점을 챙기는 편이 안전하겠습니다.

    요약: 홀드백이 여섯 주뿐이므로, 스펙터클이 아니라 중간에 멈추지 않을 수 있는지를 기준으로 극장과 넷플릭스를 가르는 편이 합리적입니다.

     

    포스터 한 장에 이미 들어 있는 구조

    줄거리는 짧게만 알려져 있습니다. 해고 노동자 호석과 아내 미옥, 다큐멘터리 감독 예지와 남편 상우. 서로 다른 자리에 선 두 부부가 다큐멘터리 제작을 매개로 만나 각자의 삶과 감춰 둔 욕망을 마주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설경구가 호석을, 전도연이 미옥을, 조여정이 예지를, 조인성이 상우를 맡았습니다.

    저는 공개된 포스터를 한참 들여다봤습니다. 밤에 가까운 푸른 숲을 배경으로 두 여성이 화면 양 끝에 떨어져 서 있는데, 오른쪽 인물은 손에 캠코더를 들고 왼쪽 인물을 찍고 있습니다. 둘 사이는 텅 빈 풀밭입니다.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그리고 그 사이를 메우지 못한 거리가 그대로 그려져 있는 셈입니다.

    이 구도를 보고 나면 영화의 무게 중심이 어디에 놓일지 짐작이 갑니다. 다큐멘터리를 찍는다는 설정은 흔히 진실에 다가가는 장치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계층의 낙차를 확인시키는 장치로 기능할 가능성이 커 보입니다. 카메라를 든 쪽과 렌즈에 담기는 쪽이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요. 외신이 사랑과 계급과 불평등을 나란히 키워드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힙니다.

    캐스팅도 우연한 조합이 아닙니다. 설경구는 박하사탕과 오아시스에 이어 세 번째로 이창동 감독과 만났고, 전도연은 밀양 이후 약 19년 만입니다. 감독이 자기 대표작을 지탱했던 두 배우를 처음으로 한 화면에 세운 것인데, 반면 조인성과 조여정에게는 이번이 첫 작업입니다. 익숙한 두 사람과 낯선 두 사람을 마주 세운 배치 자체가 두 부부의 대비와 겹칩니다. 출처: 경향신문

    요약: 포스터의 캠코더 구도는 찍는 자와 찍히는 자의 거리를 그대로 보여 주며, 감독의 옛 배우 둘과 처음 만난 배우 둘을 마주 세운 캐스팅도 같은 대비를 반복합니다.

     

    관람 팁과 추천, 그리고 비추천

    이번 작품은 순서가 뒤집혀 있습니다. 보통은 국내에서 먼저 보고 해외 반응이 뒤따라오는데, 이번엔 베니스와 토론토를 거친 뒤 국내 개봉이 옵니다. 개봉 2주 전부터 외신 리뷰가 다 나와 있는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정한 규칙은 이렇습니다.

    • 점수는 봐도 되지만 리뷰 본문은 피합니다. 실내극은 정보 하나가 유난히 크게 작동합니다.
    • 9월 12일 수상 결과는 확인하되 기대치를 그 결과에 묶지 않습니다.
    • 국제판 포스터의 미국 등급이 언어와 성적 묘사, 노출을 사유로 한 제한 등급입니다. 국내 등급은 확인 후 가족 관람 여부를 정하는 편이 좋겠습니다.
    • 상영관이 넉넉하지 않을 수 있으니 예매 개시일을 미리 챙깁니다.

    추천하고 싶은 분은 인물의 표정과 침묵에서 정보를 읽어 내는 걸 즐기는 쪽입니다. 밀양이나 시를 보고 나서 며칠 동안 장면이 남았던 경험이 있다면 이 작품도 그럴 확률이 높다고 봅니다.

    반대로 사건이 빠르게 굴러가는 이야기를 원하신다면 저는 권하지 않겠습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는 사건이 아니라 상태를 오래 들여다보는 쪽에 가깝고, 버닝에서 중도 이탈한 관객이 적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명절 연휴에 여럿이 가볍게 볼 작품을 찾고 계신다면 같은 시기 개봉작 중에 더 맞는 선택지가 있을 것입니다.

    덧붙이면 이 작품은 내년 제99회 아카데미 시상식 국제장편영화 부문 한국 대표작으로 출품됩니다. 각본은 버닝을 함께 쓴 오정미 작가가 맡았습니다.

    요약: 점수만 보고 리뷰는 피하기, 9월 12일 결과에 기대치를 묶지 않기, 등급과 상영관 확인하기. 침묵을 견디는 관객에게는 추천, 빠른 전개를 원하는 관객에게는 비추천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극장에서 안 보고 넷플릭스로 기다려도 괜찮을까요?

    여섯 주 차이라 손해가 크지는 않습니다. 다만 중간에 멈추지 않고 볼 자신이 없다면 극장이 낫다고 봅니다. 이 영화는 긴 호흡이 무너지면 인상이 함께 무너지는 종류로 보입니다.

     

    Q. 이창동 감독 영화를 한 번도 안 봤는데 이걸로 시작해도 되나요?

    가능은 합니다. 다만 밀양이나 시를 먼저 보시면 감독이 인물을 대하는 태도가 익숙해져 훨씬 편하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전 지식보다 속도에 대한 각오가 더 필요합니다.

     

    Q. 기립박수 6분과 7분, 어느 쪽이 맞습니까?

    매체마다 다르게 보도됐습니다. 재기 시점이 제각각이라 정확한 값을 가리기 어렵고, 애초에 이 수치를 작품성의 근거로 삼기는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Q. 황금사자상을 받으면 국내 흥행에도 도움이 될까요?

    화제성은 분명히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수상과 흥행이 함께 간 사례가 늘 있었던 것은 아니고, 상영관 규모라는 변수가 따로 있습니다. 발표는 9월 12일입니다.

     

    결론

    정리하면 이번 관람 결정은 작품이 좋은가라는 질문이 아니라 내가 이 영화를 어디서 견딜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습니다. 평가는 이미 나와 있고, 남은 변수는 극장의 두 시간과 거실의 두 시간 중 어느 쪽이 이 영화를 온전히 담아 주느냐입니다. 저는 9월 23일 쪽에 표를 걸어 두려 합니다. 9월 12일 베니스 발표부터 확인하시고, 예매 개시일을 함께 챙겨 두시면 좋겠습니다.